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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통한 학교 발전 방안 밝힌 채정석 중앙교우회장
“중앙학교는 외국인 선교사가 지은 학교나, 한 개인이 사재(私財)를 털어서 만든 학교가 아닙니다. 전국의 민족지도자와 각 지방의 민립학회들이 하나로 뭉쳐서 세운 학교는 전 세계에서 중앙학교가 유일합니다.”
채정석 중앙교우회장(65·법무법인 웅빈 대표변호사)은 “민족지도자들이 자발적으로 힘을 합쳐 만든 중앙학교는 우리나라 사학(私學)의 역사를 이어오는 진정한 자율형사립고”라고 힘주어 말했다.
채 회장은 중앙고를 비롯해 서울시내 8개 자율형사립고 지정취소 관련 소송에서 서울시교육청이 모두 패소한 데 대해 “사필귀정의 당연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교육에는 공립학교 교육도 중요하지만 사립학교의 자율성 있는 교육 정책과 학생선발권을 보장해주는 교육도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계동에 있는 중앙학교의 역사는 1908년 1월 경기도와 충청도 출신의 우국지사들을 중심으로 창립된 기호흥학회(畿湖興學會)로부터 비롯됐다. 당시는 을사늑약(乙巳勒約·1905년) 체결로 나라의 명운이 풍전등화처럼 위태롭던 시절이었다. 민족 선각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가능한 일은 신교육, 신문화의 계몽을 통해 후학을 양성하고 실력을 기르는 일이라고 생각해 전국 각지에서 학회와 학교를 조직하는 데 힘을 모으고 있었다.
그러나 각 지역의 민립학교는 재정난을 겪었다. 기호학교는 1910년 9월 융희학교와 합병한다. 융희학교는 개화 선각자 유길준 선생이 주축이 되어 1907년에 조직된 흥사단이 세운 학교인데, 두 학교 모두 경영난으로 존속이 여의치 않게 되자 합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와 함께 같은 해 11월 호남학회, 교남교육회, 관동학회도 기호흥학회와 합쳐져 중앙학회로 개칭하고, 학교 이름도 ‘사립중앙학교’로 바꾸었다. 이후 1915년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 선생이 중앙학교를 인수해 명문 사학으로 키워냈다.
―중앙고가 자율형사립고를 유지하는 이유는….
“최남선 선생이 지은 중앙고의 교가에는 ‘건아야 모였도다 열세 길로서∼ 퍼지리라 골고루 예서 얻은 빛’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중앙고는 구한말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는 많은 독립운동가들과 선각자들이 사비를 털어서 세운 전국 각지의 민립학교가 한데 통합해 만든 학교입니다. 일제강점기의 관제교육에 맞서 민족정신을 키우는 사립학교 교육을 대표하는 학교였습니다. 대한민국은 건국 이래로 사립학교 교육에 상당한 제약을 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공립학교와 더불어 사립학교의 자율적인 교육에 대한 보장은 해줘야 한다고 봅니다.”
광복 이후 1970년대 중반 고교평준화가 실시될 때까지 세칭 5대 명문 공립(公立) 고교로는 경기·서울·경복·용산·경동고등학교가, 5대 명문 사학으로는 중앙·휘문·보성·양정·배재고등학교가 꼽혔다. 그러나 고교평준화 이후 이들 중 상당수는 교육 여건이 더 나은 강남으로 학교를 이전했다. 공립 중에선 경기고와 서울고가 강남으로 옮겨갔고, 5대 명문 사학 중 지금도 강북 서울 종로구 한복판에 남아 있는 학교는 중앙고등학교가 유일하다.
채 회장은 “인구공동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서울 구도심에 있는 학교는 가까운 지역에 살고 있는 학생이 없어 정원을 채우기도 힘들다”며 “중앙고는 창학 당시부터 전국 13도에서 온 학생을 가르치고, 다시 전국으로 내보냈던 학교였던 만큼 지역을 떠나 서울지역 전체나 전국에서 자유롭게 학생들이 지원할 수 있는 학교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앙교우회는 1911년 1회 졸업생이 배출된 해에 만들어져 올해로 110주년을 맞았다. 중앙교우회 역대회장은 윤치영 전 국회부의장, 국어학자 이희승 박사, 채문식 전 국회의장, 김각중 전 전국경제인연합회 명예회장, 김봉은 전 외환은행장, 조중건 대한항공 고문,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서정호 앰버서더호텔그룹 회장 등 학계 정치계 관계 경제계에서 큰 역할을 한 거목들이 맡아왔다.
중앙교우회는 중앙고 100주년을 맞아 자율형사립고로 지정되자 교우회관 건립기금으로 모았던 80억 원의 기금 전액을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 건립기금으로 기증했다. 중앙고는 2012년 총 246명이 생활할 수 있는 최신 시설의 기숙사를 완공했다. 또한 중앙교우회가 모은 약 40억 원의 기금으로 만들어진 계원장학회가 학생들의 등록금을 지원하고, 매년 학생들을 선발해 미주 연수를 지원해왔다.
채 회장은 중앙교우회를 재단법인으로 발전시켜 학생과 교직원을 위한 다양한 지원사업을 벌일 계획을 밝혔다. “현행법상 교우회가 운영하는 장학재단은 학생들의 등록금만 지원할 수 있기 때문에 한계가 많습니다. 교우회가 재단법인을 설립해 학교에 필요한 첨단 교육 기자재 지원, 원어민 교사 채용 확대, 교사들의 교육훈련, 생활이 어려운 학생 생활비 지원 등 자율형사립고인 중앙을 발전시키기 위한 다양한 지원사업을 펼치고자 합니다.”
―중앙을 상징하는 정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중앙하면 떠오르는 정신은 ‘민족’입니다. 그다음이 ‘자유’입니다. 개교 이래 규율부가 없었고, 두발과 교복도 자유로운 학풍을 이어왔습니다. 또한 인촌 김성수 선생의 ‘공선사후(公先私後)’와 ‘양입계출(量入計出)’ 정신도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사회나 단체생활을 할 때 개인적인 생각보다는 공인으로서의 의식을 갖고, 합리주의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 중앙의 정신입니다.”
채 회장은 사법시험과 행정고시를 모두 합격한 후 법무부와 서울중앙지검 등 주요검찰청 검사 및 부장검사, 수원지검 여주지청장 등을 역임했다. 한화그룹 경영기획실 법무실장 사장을 지낸 법률전문가이자 저작권연구소를 설립하여 문화·스포츠저작권 관련 사업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왔으며,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부회장을 맡고 있다.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중앙의 교지(校旨)는 ‘웅원(雄遠)’ ‘용견(勇堅)’ ‘성신(誠信)’입니다. 웅원은 ‘소년이여 꿈을 가져라’(Boys be Ambitious!)라는 말처럼 큰 꿈을 지니라는 뜻이고, 용견은 어려움이 닥쳤을 때 굳건하게 견디며, 용감하게 헤쳐나가라는 말입니다. 성신은 성실하고 꾸준하게, 믿음이 가도록 행동하라는 뜻이죠. 요즘 벤처기업을 하는 젊은이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삶의 자세는 없습니다. 멀리 보고 큰 꿈을 꾸고, 어려움을 용감하게 헤쳐나가고, 성실하고 꾸준하게 살아가라는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