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중앙고 89회)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그 심판'을 꿈꾸는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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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중앙고 89회)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그 심판'을 꿈꾸는 사나이
김재영(중앙고 89회) 심판, MLB 루키리그 심판 합격김재영 심판이 대한야구소프트볼연맹(KBA) 소속 심판으로는 최초로 미국 마이너리그 심판이 됐다.© News1
(서울=뉴스1) 정명의 기자 =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심판'을 꿈꾸는 사나이가 있다. 한국에서 아마추어 심판으로 활동했던 김재영(39) 심판이 그 주인공이다.
김재영 심판은 지난 2012년부터 대한야구소프트볼연맹(KBA) 소속으로 활동해왔다. 그러던 지난 2월, 미국 마이너리그 심판 시험에 당당히 합격했다.
김 심판은 대부분의 심판이 그렇듯 선수 출신이다. 프로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지 못해 심판으로 눈을 돌렸고,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미국으로 건너가게 됐다.
김 심판의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한 1998년,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하자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다. 주변의 도움으로 보스턴 레드삭스 산하 루키리그에 입단하기까지는 성공. 그러나 1년만에 방출되고 말았다.
방출 후 1년 더 미국에서 테스트를 받으며 버텼으나 결국 2000년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에 진학했다. KBO리그 입단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 뜻을 이루지 못한 뒤 현역으로 군에 입대했다.
제대 후에는 사이판으로 건너가 현지 야구 꿈나무들을 지도하며 영어 공부를 병행했다. 다시 국내로 돌아온 뒤에는 3년 정도 헬스장 트레이너로 일했다. 그러면서도 김 심판은 야구에 대한 꿈을 놓지 않았다.
결국 김 심판은 명지전문대 심판학교에 입학, 2012년부터 KBA 소속으로 심판 생활을 시작했다. 심판으로서의 꿈도 프로 무대에 서는 것이었지만 KBO리그 심판은 나이 제한이 있었다.
그러자 김 심판은 다시 미국으로 눈을 돌렸다. 계기는 2015년 광주에서 열린 하계 유니버시아드였다. 대회에 파견을 나갔던 김 심판은 미국에서 심판으로 활동 중이던 히라바야시 다케시라는 일본인 심판위원장을 만났다.
히라바야시 심판은 일본 프로야구 심판을 그만두고 꿈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인물. 그의 조언을 통해 김 심판도 미국행 꿈을 다시 꾸게 됐다.
2016년 1월, 김 심판은 처음으로 마이너리그 심판 아카데미에 등록해 교육을 받았다. 심판 아카데미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면 마이너리그 심판으로 채용될 수 있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었다. 김 심판은 첫 아카데미에서 국내에 없는 시스템을 경험한 것에 의미를 뒀다.
미국 마이너리그 심판 아카데미는 한달 내내 이론 강의를 한 뒤 야구장에서 실습까지 이루어지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다. 일주일 두세 번 교육에 그치는 한국 아카데미와는 차이가 크다.
김 심판은 2017년 다시 도전을 하려 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1년을 보류한 뒤 올해 다시 도전장을 내밀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그동안의 준비가 결실을 맺었다.
김재영 심판이 대한야구소프트볼연맹(KBA) 소속 심판으로는 최초로 미국 마이너리그 심판이 됐다.© News1
김 심판은 "영어가 많이 늘었다고 칭찬을 받았다"며 "미국에서 심판이 되기 위해서는 언어 구사력이 중요하다.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각 팀에게 설명을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 갔을 때 받았던 영문 규칙서를 보고 공부를 해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마이너리그 심판 아카데미는 4주 교육을 통한 평가로 100여명 중 30명에게 다음 코스 교육 자격을 부여한다. 여기서 또 다른 심판 아카데미의 30명이 합쳐져 총 60명이 교육을 받고, 그중 20여명만 마이너리그 심판으로 채용된다.
KBA 심판 출신으로 미국 마이너리그 심판에 합격한 인물은 김 심판이 최초다. 현지에서 생활하던 한국인 중 마이너리그 심판으로 활동한 이는 몇몇 있었다.
루키리그부터 미국에서 심판 생활을 시작하게 되는 김 심판은 싱글A, 더블A, 트리플A를 거쳐 메이저리그 심판이 되겠다는 '큰 꿈'을 꾸고 있다. 아직 한국인 중에는 메이저리그 심판이 없다.
김 심판은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그 심판을 꿈꾸고 있다. 꿈은 크게 잡아야 된다고 생각한다"며 "선수만 메이저리거가 되는 게 아니라 심판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상위 리그로 올라서기까지는 각 단계별 2년 씩이 소요된다. 루키리그에서 시작하는 김 심판이 메이저리그에 오르려면 최소 8년이 필요하다.
물론 다음 단계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반대로 평가가 좋지 않으면 하위 리그로 떨어지기도 한다. 이는 1·2군 이동이 폐쇄적인 KBO리그와 다른 점이다.
김 심판이 미국행을 결정하기까지는 고민이 많았다. 루키리그 심판 수입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 상위 리그로 올라갈수록 처우가 좋아지지만 당분간은 힘든 생활을 견뎌야 한다.
김 심판은 "이번에 함께 합격한 심판들은 대부분 20대 초반이다. 어린 친구들과 경쟁했는데 잘 버틴 것 같다"며 "20년만에 다시 미국에서 활동하게 됐다. 선수 때와 마찬가지로 루키리그에서 시작한다. 어려움이 많겠지만 끝까지 도전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doctorj@
(서울=뉴스1) 정명의 기자 =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심판'을 꿈꾸는 사나이가 있다. 한국에서 아마추어 심판으로 활동했던 김재영(39) 심판이 그 주인공이다.
김재영 심판은 지난 2012년부터 대한야구소프트볼연맹(KBA) 소속으로 활동해왔다. 그러던 지난 2월, 미국 마이너리그 심판 시험에 당당히 합격했다.
김 심판은 대부분의 심판이 그렇듯 선수 출신이다. 프로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지 못해 심판으로 눈을 돌렸고,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미국으로 건너가게 됐다.
김 심판의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한 1998년,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하자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다. 주변의 도움으로 보스턴 레드삭스 산하 루키리그에 입단하기까지는 성공. 그러나 1년만에 방출되고 말았다.
방출 후 1년 더 미국에서 테스트를 받으며 버텼으나 결국 2000년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에 진학했다. KBO리그 입단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 뜻을 이루지 못한 뒤 현역으로 군에 입대했다.
제대 후에는 사이판으로 건너가 현지 야구 꿈나무들을 지도하며 영어 공부를 병행했다. 다시 국내로 돌아온 뒤에는 3년 정도 헬스장 트레이너로 일했다. 그러면서도 김 심판은 야구에 대한 꿈을 놓지 않았다.
결국 김 심판은 명지전문대 심판학교에 입학, 2012년부터 KBA 소속으로 심판 생활을 시작했다. 심판으로서의 꿈도 프로 무대에 서는 것이었지만 KBO리그 심판은 나이 제한이 있었다.
그러자 김 심판은 다시 미국으로 눈을 돌렸다. 계기는 2015년 광주에서 열린 하계 유니버시아드였다. 대회에 파견을 나갔던 김 심판은 미국에서 심판으로 활동 중이던 히라바야시 다케시라는 일본인 심판위원장을 만났다.
히라바야시 심판은 일본 프로야구 심판을 그만두고 꿈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인물. 그의 조언을 통해 김 심판도 미국행 꿈을 다시 꾸게 됐다.
2016년 1월, 김 심판은 처음으로 마이너리그 심판 아카데미에 등록해 교육을 받았다. 심판 아카데미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면 마이너리그 심판으로 채용될 수 있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었다. 김 심판은 첫 아카데미에서 국내에 없는 시스템을 경험한 것에 의미를 뒀다.
미국 마이너리그 심판 아카데미는 한달 내내 이론 강의를 한 뒤 야구장에서 실습까지 이루어지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다. 일주일 두세 번 교육에 그치는 한국 아카데미와는 차이가 크다.
김 심판은 2017년 다시 도전을 하려 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1년을 보류한 뒤 올해 다시 도전장을 내밀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그동안의 준비가 결실을 맺었다.
김재영 심판이 대한야구소프트볼연맹(KBA) 소속 심판으로는 최초로 미국 마이너리그 심판이 됐다.© News1
김 심판은 "영어가 많이 늘었다고 칭찬을 받았다"며 "미국에서 심판이 되기 위해서는 언어 구사력이 중요하다.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각 팀에게 설명을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 갔을 때 받았던 영문 규칙서를 보고 공부를 해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마이너리그 심판 아카데미는 4주 교육을 통한 평가로 100여명 중 30명에게 다음 코스 교육 자격을 부여한다. 여기서 또 다른 심판 아카데미의 30명이 합쳐져 총 60명이 교육을 받고, 그중 20여명만 마이너리그 심판으로 채용된다.
KBA 심판 출신으로 미국 마이너리그 심판에 합격한 인물은 김 심판이 최초다. 현지에서 생활하던 한국인 중 마이너리그 심판으로 활동한 이는 몇몇 있었다.
루키리그부터 미국에서 심판 생활을 시작하게 되는 김 심판은 싱글A, 더블A, 트리플A를 거쳐 메이저리그 심판이 되겠다는 '큰 꿈'을 꾸고 있다. 아직 한국인 중에는 메이저리그 심판이 없다.
김 심판은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그 심판을 꿈꾸고 있다. 꿈은 크게 잡아야 된다고 생각한다"며 "선수만 메이저리거가 되는 게 아니라 심판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상위 리그로 올라서기까지는 각 단계별 2년 씩이 소요된다. 루키리그에서 시작하는 김 심판이 메이저리그에 오르려면 최소 8년이 필요하다.
물론 다음 단계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반대로 평가가 좋지 않으면 하위 리그로 떨어지기도 한다. 이는 1·2군 이동이 폐쇄적인 KBO리그와 다른 점이다.
김 심판이 미국행을 결정하기까지는 고민이 많았다. 루키리그 심판 수입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 상위 리그로 올라갈수록 처우가 좋아지지만 당분간은 힘든 생활을 견뎌야 한다.
김 심판은 "이번에 함께 합격한 심판들은 대부분 20대 초반이다. 어린 친구들과 경쟁했는데 잘 버틴 것 같다"며 "20년만에 다시 미국에서 활동하게 됐다. 선수 때와 마찬가지로 루키리그에서 시작한다. 어려움이 많겠지만 끝까지 도전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doctor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