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손 수술 잘 하려 왼손 젓가락질한 선생님” 대동맥 수술 명의 추모 물결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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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 수술 잘 하려 왼손 젓가락질한 선생님” 대동맥 수술 명의 추모 물결
입력 2023.06.18. 21:29업데이트 2023.06.19. 07:58
주석중(59)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가 16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인근 교차로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 우회전하던 트럭이 자전거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던 주 교수를 치었다. ‘대동맥 수술 명의(名醫)’가 불의의 사고로 숨졌다는 소식은 그가 살린 환자들이 소셜미디어에 추모 글을 잇달아 올리면서 퍼졌다.
17일 새벽 ‘나를 살린 선생님’이란 내용의 글이 페이스북에 올라왔다. ‘일주일 전에 뵌 것이 마지막일 줄이야. 선생님 덕분에 저는 아직 살아 있습니다.’ 추모 글이 잇따랐다. ‘환자 한 명이라도 더 살리려고 병원 근처에서 사셨던 분. 저도 그렇게 해서 살아났습니다’ ‘DNA까지 의사이셨던 분’ ‘다른 병원에서 힘들다고 해서 마지막으로 찾아갔던 선생님, 제 목숨의 은인’….
18일 새벽에는 ‘아버지가 대동맥류 심장 질환으로 쓰러졌을 때 교수님 수술을 받고 기적적으로 살 수 있었다’는 사연이 올라왔다. ‘명절에도 병원에서 숙식하시던 분. 병실에 불쑥 찾아오셔서 위로해 주시던 교수님. 사랑합니다.’
빈소에는 의료계 동료뿐 아니라 환자와 보호자의 발길도 이어졌다. 회진 시간이 아닌데도 병실을 돌며 환자를 돌보고 기도해 주던 주 교수의 모습을 기억 속에 간직한 이들이다. ‘2009년 6월 교수님께 수술받은 강00’ ‘2020. 9. 대동맥판막 수술 환자 조00’ 같은 글귀가 쓰인 부의금 봉투도 여럿 보였다. 주 교수에게 진료를 받아온 입원 환자들은 19일 오전 함께 조문하기로 했다.
이날 오후 서울아산병원 빈소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보낸 조화 등 수십 개가 놓여 있었다. 유족들은 주 교수를 “환자밖에 모르던 사람”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주 교수는 1998년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전임의 근무를 시작하며 병원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의 아파트로 이사했다고 한다. 응급 환자가 생기면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가기 위해서다. 동료 의사들은 그를 “대체 불가능한 실력의 의사”라고 했다.
주 교수는 사고 이틀 전인 14일 수술이 길어져 새벽 3시 30분에 귀가했지만, 잠을 거의 못 자고 바로 출근했다. 사고 전날에는 처가 식구들과 저녁 식사 약속이 있었으나 급한 수술이 잡혀서 가지 못했다. 유족들은 “사고 당시 사진을 보니 두 동강 난 자전거와 서류 가방, 대형 할인점에서 산 신발이 보이더라”고 했다. 집에서 진료 관련 서류를 갖고 자전거를 타고 병원으로 돌아가던 중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다.
주 교수는 생전 병원 소식지에 “장시간 수술이 버거울 때가 있지만, 환자가 극적으로 회복되면 힘들었던 걸 다 잊는다”고 썼다. 그는 술과 골프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양손 수술에 더 익숙해지려 집에 돌아와서도 왼손으로 젓가락질하고 바느질하는 연습을 했다. 어쩌다 쉬는 날에는 집에서 빵을 만들어 가족, 친지들과 나눠 먹는 걸 좋아했다. 남편의 모습을 지켜본 주 교수의 아내는 봉사 활동을 하려고 최근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땄다.
주 교수는 최근 비인기 전공인 흉부외과 미래를 걱정했다고 한다. 고생스럽고 위험 부담이 큰 분야이지만, 꼭 필요한 분야인 만큼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인재가 모일 수 있을까 고민했다는 것이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페이스북에 “주 교수처럼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의미 있는 발전을 이뤄내는 ‘조용한 영웅’들에 의해 사회가 발전하는 것”이라며 “‘탁월하고 훌륭한’이라는 표현으로 부족한 인재의 부재로 인해 누군가는 살아날 수 있는 소생의 기회를 잃게 될 것”이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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